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원제: Why Fish Don't Exist)/2021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보문고 기준, 교양과학 서적으로 분류되으며 출간된 지 6개월 가까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평소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위주의 편식 독서를 하는 나는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는 판단에 이 책을 보기로 결심했다. 일반적으로는 책 제목에서 대략적인 주제 및 내용은 파악할 수 있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리무중이었다. 난해한 표지 디자인은 책 내용 유추에 어려움을 주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책을 하루 만에 다 일고 그 난해함은 경이로움과 기분 좋은 충격으로 변해있었다. 교양과학 서적을 읽고 이런 반응을 느낀 것은 아주 오랜만인 것 같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분류학자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전기(傳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1851년, 그러니까,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8년전에 태어나 이후, 수천 종의 새로운 어류종을 발견한 입지전적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총 13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전반부인 7장까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성장기 및 사회적 성공 그리고 좌절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전기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개로 사실 전반부까지는 그리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 물고기에 미친 어느 남자가 역경을 딛고 성공했다는 닳고 닳은 성공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으니까. 저자가 기술했듯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수식하는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낙천성의 방패를 두른 사람이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기(傳記) 소설에서 후반부 급격한 장르 변경
하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진가는 후반부에 드러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후원자였던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을 둘러 싼 의혹을 다루면서 책의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구성한 논픽션 작품에서는 독자가 예상하기 힘든 독창적인 구성으로 룰루 밀러 작가의 천재성이 엿보인다. 전반부까지는 긍정적인 시선과 경외의 마음으로 다루고, 후반부에 갑자기 주인공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살인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다루니, 독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미 위인으로 각인된 주인공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후반부의 내용 전개를 통해 의도적으로 독자들에게 불편한 경험을 주어, 오랜 기간 공고하게 쌓인 잘못된 믿음 및 권위에 대한 도전이 이 책을 쓴 진짜 이유이며, 이 과정이 아주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임을 독자들에게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만든다. 아주 놀랍고도 영리한 방식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생학의 성지 미국의 숨기고 싶은 과거 조명
이 책의 결론을 본 포스팅에서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다만 이 책의 이후 전개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20세기 초반 우생학에 심취하여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을 살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생학 하면 떠올리는 것은 히틀러의 유태인 집단학살(홀로코스트)이지만, 미국도 그에 못지않은 여러 흑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재도 종결되지 않은 역사임을 고발한다. 마지막 챕터 3개는 읽으면서 다소 가슴이 아프면서 뜨거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끝에 다다를 때면 여러분도 여러분이 알고있던 상식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변화가 그 빈틈을 채우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실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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